
어제(7일) 이재명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 문제의 제도화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였다.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정권 차원의 정책 기조에 머물게 하지 않고 입법과 조약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지속 가능하게 만들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추가 생산 중단을 핵심으로 하는 이른바 핵동결 구상을 제시했다. 이제는 한반도 평화 제도화와 핵동결 구상이 어떤 목표와 경로를 상정하고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때이다.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를 언급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동안 남북관계의 안정은 정상회담이나 합의 선언 등 정치적 이벤트에 크게 의존해 왔고, 정권 교체와 함께 쉽게 흔들려 왔다는 점에서 남북합의의 제도화를 통한 한반도 긴장 완화는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한반도 평화를 국제조약의 틀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동아시아 지역 안보 구조를 다자적이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재편하는 것 역시 필요한 과제다. 한반도 문제가 특정 강대국의 영향력 아래 종속되지 않고, 역내 국가들이 공동으로 평화를 담보하는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면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중간자적 위치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워졌고,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등 태평양 지역 전반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언하며 남북 대화의 의지를 차단했고, 미국을 향해서도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비핵화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를 제도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남북 간 합의를 법제화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과제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제도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범위의 사안을 포괄하며, 어떤 국제적 틀 속에서 실현될 것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제기된 핵동결 구상 역시 변화된 현실을 반영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북한 정권 입장에서 지금 핵을 없애는 것을 동의할 수 있겠나. 제가 보기에 북한의 수용은 불가능하다”며 “그렇다고 방치할 수 없으니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실현 가능한 길을 찾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라는 현실을 전제로 비핵화가 아닌 핵 불용화·핵 관리 논의가 등장한 배경 또한 이해 가능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E.N.D 구상(한반도 비핵·평화 이니셔티브)'과 ‘핵 없는 한반도’ 기조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분명한 목표로 천명해 온 만큼, 그 목표가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평화적 두 국가론 구상이 통일의 포기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선적 단계인 것처럼, 현재의 핵동결 구상 역시 최종 목표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단계로 분명히 위치 지어져야 한다.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와 핵동결 구상이 단순한 관리 전략에 머물러 현상을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이는 평화의 진전이 아니라 정체에 불과하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 제도화가 어떤 범위의 사안과 국제적 구속력을 상정하고 있는지, 핵동결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상위 목표와 어떤 관계 속에 위치하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핵동결이 최종 상태가 아니라 비핵화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단계임을 명확히 하고, 그 이행 경로와 검증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방향이 선언적 메시지에 그치지 않고 목표의 위계와 경로가 분명한 실천 전략으로 이어질 때에만, 한반도 평화의 지속 가능한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1월 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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